
임플란트 특허 무효: 숫자 한정이 발목 잡은 이유
임플란트 특허 무효: 숫자 한정이 발목 잡은 이유
획기적인 기술로 개발된 특허라도, 기존 기술과의 차별성을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면 특허 무효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발명의 특징을 구체적인 ‘숫자 범위’로 한정하는 경우, 그 범위 설정의 근거와 기술적 효과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면 진보성 부족으로 특허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최근 특허법원에서 다뤄진 일체형 임플란트 관련 특허 무효 소송(구체적인 사건 번호 생략)은 이러한 숫자 한정 발명의 함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특허권자는 기존 기술의 문제점을 해결한 혁신적인 발명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선행 기술과 대비하여 볼 때 통상의 기술자가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하여 결국 심결을 유지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해당 판결의 주요 쟁점이었던 ‘진보성’ 판단, 특히 ‘수치 한정’의 의미와 한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번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특허 무효 소송의 배경: 일체형 임플란트 기술
문제가 된 특허는 골 내 매식부, 잇몸 관통부, 보철 부착부가 하나로 이루어진 ‘일체형 임플란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발명은 특히 보철물 부착 중앙홀의 깊이(1.5~15mm)와 중앙홀 입구로부터 보철 부착부 외주면까지의 직선거리(0.2~3mm) 등을 특정 수치 범위로 한정한 것을 특징 중 하나로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특허권자는 이러한 구조를 통해 구강 내 밀링 작업 없이도 다양한 형태의 최종 보철물을 안정적으로 부착할 수 있고, 부착 면적을 증가시켜 탈락을 방지하는 등의 장점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특허 등록 이후, 경쟁사(피고)는 해당 특허가 선행 기술에 비해 새롭지 않거나(신규성 부정) 진보하지 않았다(진보성 부정)는 이유로 특허심판원에 특허 무효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특허심판원은 신규성은 인정하면서도, 몇몇 선행 기술과 비교했을 때 발명의 진보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특허 무효 심결을 내렸고, 이에 불복한 특허권자(원고)가 특허법원에 심결 취소를 구하는 특허 무효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특허 무효 핵심 쟁점 1: 진보성 판단과 선행발명
이번 소송의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진보성’이 인정되는지 여부였습니다. 진보성이란 해당 기술 분야의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하 ‘통상의 기술자’)이 특허 출원 시점에 이미 공개된 기술(선행발명)로부터 해당 발명을 쉽게 생각해 낼 수 없는 ‘기술적 진보’의 정도를 의미합니다. 통상의 기술자가 쉽게 발명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진보성이 부정되어 특허 무효 사유가 됩니다.


법원은 여러 선행발명 중, 특히 공개특허공보(선행발명 4)에 개시된 치과용 임플란트 기술을 주요 비교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선행발명 4 역시 고정체(골내 매식부 대응)와 지대주(잇몸관통부 및 보철부착부 대응)가 일체로 형성되고, 지대주 내부에 보철물 부착을 위한 헤드 삽입홀 및 삽입홈(중앙홀 대응)을 포함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성요소 비교: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랐나?
법원은 이 사건 특허발명의 청구항 1과 선행발명 4의 구성요소를 상세히 비교했습니다.
- 골내 매식부, 잇몸 관통부, 보철 부착부, 보철물 부착 중앙홀 등 기본적인 구조는 양 발명에서 실질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차이점은 주로 특허 발명에서 한정한 ‘수치 범위’에 있었습니다.
- 중앙홀 깊이: 특허 발명은 1.5~15mm로 한정.
- 홀 개수: 특허 발명은 4개 이하로 한정.
- 직선 거리: 특허 발명은 중앙홀 입구로부터 보철 부착부 외주면까지 0.2~3mm로 한정.
이러한 차이점이 통상의 기술자가 선행발명 4로부터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진보한 것’인지 여부가 특허 무효 여부를 가르는 핵심이었습니다.
특허 무효 사유 분석: 숫자 한정의 함정
법원은 특허 발명에서 내세운 숫자 범위 한정이 진보성을 인정받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결국 특허 무효라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차이점 1 (중앙홀 깊이 1.5~15mm): 단순한 수치 선택인가?
특허 발명은 중앙홀의 깊이를 1.515mm로 한정했습니다. 하지만 선행발명 4의 명세서와 도면을 보면, 헤드 삽입홀(L1: 23mm), 암나사 형성부(L2: 23mm), 원추 모양부(L3: 1.82.2mm)의 길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합산하면 선행발명 4의 전체 홀 깊이는 대략 5.8mm에서 11.2mm 범위에 해당합니다. 이는 특허 발명이 한정한 1.5~15mm 범위 내에 완전히 포함됩니다.


더욱이 특허 발명의 명세서에는 왜 하필 ‘1.5~15mm’라는 범위가 설정되었는지, 이 범위를 가짐으로써 어떠한 특별하고 현저한 기술적 효과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실험 데이터가 부족했습니다. 단순히 ‘바람직하다’는 정도의 기재만으로는 불충분했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수치 한정은 선행발명 4를 접한 통상의 기술자가 임플란트의 크기나 필요한 보철물의 종류 등을 고려하여 통상적인 실험을 통해 적절히 선택할 수 있는 ‘단순한 수치 한정’ 또는 ‘설계 변경’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진보성을 인정할 만한 기술적 특징이 되지 못해 근거가 되었습니다.
차이점 2 (직선 거리 0.2~3mm): 기술적 의의 불분명
특허 발명은 중앙홀 입구로부터 보철 부착부 외주면 상부 끝단까지의 직선 거리를 ‘0.2~3mm’로 한정했습니다. 선행발명 4에는 이 거리에 대한 명시적인 기재는 없었으나, 도면(도 3 등)을 통해 헤드와 헤드 삽입홀 사이의 구조를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 역시, 특허 발명의 명세서에는 왜 이 거리가 ‘0.2~3mm’여야 하는지, 이로 인해 얻어지는 구체적인 기술적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법원은 이 역시 임플란트 헤드 및 삽입홀의 전체적인 크기를 고려하여 통상의 기술자가 적절히 선택할 수 있는 범위의 수치 한정에 불과하며, 기술적 의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또한 판단을 뒷받침했습니다.
결국, 청구항 1은 선행발명 4와 비교하여 볼 때, 차이점이라고 주장하는 부분들이 통상의 기술자가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단순한 수치 변경이나 설계 사항에 불과하여 진보성이 부정되었고, 이는 특허 무효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특허 무효 핵심 2: 종속항의 운명과 진보성
특허 발명의 청구항 2는 청구항 1의 종속항으로서, ‘잇몸관통부의 높이가 0.3~8mm 범위 내로 형성’된다는 한정 사항을 추가하고 있었습니다. 이 종속항 역시 특허 무효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선행발명 4의 명세서에는 잇몸관통부에 대응되는 ‘네크부(116)’의 두께를 ‘개개인마다 각기 다른 치조골의 높이에 대응하여 전체 높이를 맞추도록 조절한다’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문단번호 [0037]). 이는 통상의 기술자라면 환자의 상태에 맞게 네크부의 높이를 적절히 조절하여 설계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특허 발명의 명세서에는 잇몸관통부 높이를 ‘0.3~8mm’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기재 외에, 이 수치 범위를 채택함으로써 얻어지는 특별한 기술적 효과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법원은 이 역시 선행발명 4에 비추어 통상의 기술자가 필요에 따라 적절히 선택할 수 있는 단순한 수치 한정에 불과하다고 보아, 청구항 2 역시 진보성이 부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독립항인 청구항 1의 특허 무효에 더하여 종속항마저 진보성을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특허 무효 소송 중 정정 시도와 법원의 판단
특허권자는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에, 선행발명 4 등을 의식하여 특허 내용을 일부 수정하는 ‘정정심판’을 특허심판원에 청구했습니다. 정정심판은 특허의 흠결을 치유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하지만 특허심판원은 이 정정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습니다.
특허권자는 이 기각 결정에 불복하는 소송을 별도로 제기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의 절차를 그 정정 관련 소송이 끝날 때까지 중단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습니다. 정정된 내용으로 다시 한번 특허 유효성을 다투어 특허 무효를 피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로, ① 특허 무효 여부에 대한 판단이 장기간 불확정한 상태로 두는 것은 특허 분쟁의 신속한 해결을 저해하고, ② 특허권자에게 정정 기회는 충분히 보장되었으며, ③ 기각된 정정 내용 자체도 여전히 진보성이 부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점 등을 고려했습니다. 즉, 절차 지연 가능성과 정정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특허 무효 소송 절차를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결론: 특허 무효 판결의 시사점
결론적으로 특허법원은 이 사건 임플란트 특허의 청구항 1과 2 모두 선행발명 4에 의해 진보성이 부정된다고 판단하여, 특허 무효 심결을 유지하고 원고(특허권자)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는 특허 등록 요건, 특히 진보성 판단의 엄격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례입니다.
이번 특허 무효 판결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 숫자 한정의 명확한 기술적 근거 필수: 발명을 특정 수치 범위로 한정할 경우, 왜 그 범위가 설정되었는지, 그리고 그 범위를 가짐으로써 선행 기술 대비 어떠한 예측 불가능하고 현저한 효과가 발생하는지를 명세서에 구체적인 설명이나 실험 데이터로 명확히 뒷받침해야 합니다. ‘바람직하다’ 수준의 언급만으로는 진보성을 인정받기 어려워 특허 무효의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 선행 기술과의 차별성 명확화: 특허 출원 전에 관련된 선행 기술을 충분히 조사하고, 자신의 발명이 선행 기술과 비교하여 어떤 점에서 명확하게 차별화되고 기술적으로 진보했는지를 명확히 분석하고 명세서에 반영해야 합니다. 이것이 특허 무효 공격을 방어하는 기초가 됩니다.
- ‘통상의 기술자’ 관점에서의 평가: 특허 요건 판단은 항상 ‘통상의 기술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집니다. 발명자에게는 획기적으로 보일지라도, 해당 분야의 평균적인 전문가가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수준이라면 진보성을 인정받기 어렵고, 이는 특허 무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정정 제도의 한계 인지: 특허 정정은 모든 흠결을 치유할 수 있는 만능 해결책이 아닙니다. 정정 요건 자체가 까다롭고, 정정된 내용 역시 다시 신규성, 진보성 등의 특허 요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특허 무효 위기에 몰렸을 때 정정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강력하고 안정적인 특허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출원 단계에서부터 선행 기술과의 차별성을 명확히 하고, 발명의 기술적 효과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이번 사례는 숫자 한정 발명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특허 명세서 작성 및 권리 확보 전략 수립에 있어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 이 글은 서울행정법원 판결 이야기를 아주 쉽게 바꾸어 쓴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건 번호는 생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