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무효 심결 뒤집힐까? FinFET 기술 특허 분쟁 심층 분석
특허 무효 심결 뒤집힐까? FinFET 기술 특허 분쟁 심층 분석
첨단 기술 분야,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특허’는 기업의 기술력을 보호하고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적인 무기입니다. 하지만 공들여 등록받은 특허라 할지라도, 그 유효성에 대한 도전을 받아 특허 무효가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오늘은 반도체 핵심 기술 중 하나인 ‘FinFET(핀펫)’ 기술과 관련된 특허 무효 분쟁 사례를 통해, 특허심판원의 심결이 법원에서 어떻게 다시 판단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법적 쟁점들이 다루어지는지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특허권자, 경쟁사, 관련 기술 연구자, 특허 전문가 등 많은 분들이 이러한 특허 무효 분쟁 사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한번 기각되었던 특허 무효 주장이 새로운 증거와 함께 다시 제기되었을 때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일사부재리’ 원칙은 어떻게 적용되는지 등 흥미로운 법적 포인트들이 많습니다.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특허 무효 소송의 세계, 핵심 쟁점을 중심으로 알기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특허 무효 분쟁의 중심: 이중-게이트 FinFET 특허
이번 특허 무효 분쟁의 대상이 된 특허는 ‘이중-게이트 FinFET 소자 및 그 제조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FinFET 기술은 기존 평면 구조 트랜지스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3차원 구조의 트랜지스터 기술입니다. 물고기 지느러미(Fin)처럼 생긴 얇은 실리콘 채널을 세우고, 그 채널의 양면 또는 삼면을 게이트가 감싸는 구조로, 전류 제어 능력을 높여 성능과 전력 효율을 크게 향상시킨 핵심 반도체 기술이죠.
이 특허는 벌크 실리콘 기판 위에 ‘담장 모양’의 Fin 액티브 영역을 형성하고, 특정 구조의 산화막과 게이트, 소스/드레인 등을 포함하는 이중-게이트 FinFET 소자를 주요 내용으로 합니다. 이러한 첨단 기술 특허는 그 자체로 높은 가치를 지니며, 권리 범위와 유효성은 관련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이번 특허 무효 소송 역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핵심 주장: 왜 특허 무효인가? (원고 측 주장)
이 사건에서 특허 무효를 주장하는 원고는 해당 특허의 주요 청구항들(특히 제1항, 제8항, 제14항)이 여러 선행기술(선행발명)들에 의해 새롭지 않거나(신규성 부정), 해당 기술 분야의 통상의 기술자(이하 ‘통상의 기술자’)가 선행기술로부터 쉽게 발명할 수 있는 것(진보성 부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이미 존재했던 기술이거나 기존 기술로부터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므로 특허로서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원고는 여러 건의 일본 및 국내 특허 공보, 미국 특허, 논문 등을 선행기술로 제시하며, 이들 각각 또는 이들의 조합을 통해 이 사건 특허 발명이 무효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일부 청구항(제8항)에 대해서는 발명의 설명이 불충분하여 통상의 기술자가 쉽게 실시할 수 없다는 ‘기재불비’ 문제도 제기했습니다. 더 나아가 공동 발명인데 단독으로 출원했거나, 정당한 권리자가 아닌 자가 출원했다는 절차적인 특허 무효 사유도 주장했습니다.
피고의 반박 및 ‘일사부재리’ 방패: 이미 끝난 분쟁 아닌가?
이에 대해 피고(특허권자 측, 특허청)는 해당 특허가 선행기술들과는 다른 고유한 기술적 특징을 가지므로 신규성과 진보성이 인정되며, 기재불비나 절차적 하자도 없다고 강력히 반박했습니다. 특히, 이 사건 특허의 핵심 구성인 ‘담장 모양의 Fin 액티브 영역’에 대한 특허심판원의 해석이 타당하며, 이러한 해석을 기초로 할 때 원고가 제시한 선행기술로는 특허 무효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더 나아가 피고는 매우 중요한 법적 주장을 펼쳤습니다. 바로 ‘일사부재리(Res Judicata)’ 원칙입니다. 일사부재리란, 쉽게 말해 ‘한번 확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동일한 사실과 동일한 증거를 가지고 다시 다툴 수 없다’는 법의 원칙입니다. 피고는 이 사건 특허에 대해 이전에 다른 회사가 특허 무효 심판을 청구했다가 기각되었고 그 심결이 이미 확정된 바 있다는 사실(선행 확정심결)을 지적했습니다.
피고는 원고가 이번 소송에서 제시한 선행발명들이 대부분 이전 특허 무효 심판에서도 제출되었거나 실질적으로 동일한 증거에 해당하므로, 이번 심판 청구 자체가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어 부적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이미 게임은 끝났으니 다시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강력한 방어 논리였습니다. 이 ‘일사부재리’ 원칙 위반 여부는 이번 특허 무효 소송의 중요한 선결 문제가 되었습니다.
법원의 판단 (1): 일사부재리 원칙, 이번 특허 무효 주장은 가능할까?
가장 먼저 법원은 이 사건 특허 무효 심판 청구가 과연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구 특허법 제163조는 “확정된 심결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동일 사실 및 동일 증거에 의하여 다시 심판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관련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여기서 ‘동일 사실’은 무효 사유(신규성/진보성 부정 등)가 동일함을 의미하고, ‘동일 증거’는 선행 확정심결의 증거와 동일한 증거뿐만 아니라, 확정된 심결을 번복할 만한 유력한 증거가 아닌 부가적인 증거까지 포함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종전 심판에서 청구 원인이 된 무효 사유 외에 다른 무효 사유를 추가하거나, 또는 동일한 무효 사유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주된 선행발명’으로 이전에 제출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는 경우에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원고가 특허 무효의 주된 근거로 새롭게 제출한 선행발명 1, 2, 3은 비록 선행 확정심결 절차에서 ‘비교대상발명’으로 언급된 적은 있으나, 신규성 또는 진보성 부정 여부를 판단하는 ‘주된 대비 대상’이 되지는 않았던 새로운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이전 심판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핵심 증거를 기반으로 한 청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원은, 비록 동일한 특허에 대해 동일한 무효 사유(신규성/진보성 부정)를 주장하더라도, 그 주장의 핵심 근거가 되는 주된 선행발명이 새롭다면 이는 ‘동일 사실 및 동일 증거’에 의한 재청구로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특허 무효 심판 청구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의 일사부재리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법원은 본안 판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원의 판단 (2): 청구항 해석 및 특허 무효 여부 심층 분석
본안 판단에 들어간 법원은 먼저 이 사건 특허의 핵심 구성요소인 ‘담장 모양의 Fin 액티브 영역'(청구항 1의 구성요소 2)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청구항 해석은 특허 무효 여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첫 단추입니다.
청구항 해석: ‘담장 모양 Fin’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고는 ‘담장 모양’이란 단순히 ‘기판 표면으로부터 수직으로 볼록 튀어나온 형태’를 의미할 뿐, 특정 형상이나 크기(예: 폭 대비 높이의 비율인 종횡비)로 한정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피고는 특허 명세서의 발명의 설명과 도면, 기술적 의의 등을 고려할 때, ‘담장 모양’은 나노 크기의 얇은 폭, 폭보다 충분히 큰 높이(높은 종횡비), 전류 방향으로 길게 늘어선 형태 등을 모두 포함하는 기술적 특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특허 명세서 전체를 참작하여 객관적·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이 사건 특허가 FinFET 구조를 통해 짧은 채널 효과를 억제하고 ON-OFF 특성을 개선하려는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 점, 명세서에 기재된 FinFET의 일반적인 특징 등을 고려했습니다. 그 결과, 법원은 ‘담장 모양’이란 단순히 튀어나온 형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FinFET 구조에서 양쪽 측벽이 주된 채널 영역이 되어 문턱 전압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히 큰 종횡비(높이/폭 비율)를 갖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피고의 해석에 더 가깝게, 기술적 의의를 반영하여 청구항의 범위를 한정한 것입니다. 낮은 종횡비, 예를 들어 높이와 폭이 1:1인 구조까지 ‘담장 모양’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신규성/진보성 판단: 선행기술과의 비교
이렇게 확정된 청구항 해석을 바탕으로, 법원은 원고가 제시한 선행발명들과 이 사건 특허 제1항, 제8항, 제14항을 구체적으로 비교하며 신규성 및 진보성(즉, 특허 무효 사유) 유무를 판단했습니다.
- 청구항 1 vs 선행발명 1, 3, 8: 법원은 특히 선행발명 1, 3, 8 각각과 청구항 1을 상세히 대비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 선행발명 모두 청구항 1의 모든 구성요소(벌크 실리콘 기판, 담장 모양 Fin 영역, 제1/제2 산화막, 게이트, 소스/드레인, 콘택/금속층 등)를 실질적으로 개시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는 Fin 영역의 단면 형상 차이(선행발명 1은 하부가 좁아지는 언더컷 형태 주장), 제2 산화막의 구조 차이(선행발명 1은 Fin 하부를 파고드는 필드 산화막 주장) 등을 들어 차이점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청구항 해석상 ‘담장 모양’이 특정 단면 형상으로 한정되지 않고, 제2 산화막 역시 ‘일정 높이까지 형성’된 것으로 해석되므로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보아, 청구항 1은 선행발명 1, 3, 8 각각에 의해 신규성이 부정되어 특허 무효 사유가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 청구항 8 vs 선행발명 1 + 4: 청구항 8은 청구항 1에 더하여, 소스/드레인 영역에 ‘선택적 에피층(Selective epi-layer)’을 성장시켜 기생 저항을 줄이는 기술적 특징을 추가한 것입니다. 법원은 선행발명 1이 청구항 1의 구성을 대부분 개시하고 있고, 선행발명 4는 FinFET 구조에서 기생 저항을 줄이기 위해 소스/드레인 영역 양쪽에 선택적 에피층을 성장시키는 기술을 명확히 개시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통상의 기술자라면 선행발명 1의 구조에 선행발명 4의 선택적 에피층 성장 기술을 결합하여 청구항 8의 발명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피고는 구조적 차이, 효과(기생 용량 문제) 등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청구항 8은 선행발명 1과 4의 결합에 의해 진보성이 부정되어 특허 무효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청구항 14 vs 선행발명들과의 결합: 청구항 14는 Fin 액티브 영역의 폭이 기판에 가까워지면서 산화막 내에서 넓어지는(즉, 역테이퍼 형상) 특징을 가집니다. 이는 Fin과 기판 사이의 전기 저항 및 열 저항을 줄이기 위한 것입니다. 법원은 이 특징이 선행발명 2와 9에 이미 개시되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청구항 1의 기본 구조를 개시하는 선행발명 1 등에 이러한 선행발명 2 또는 9의 기술을 결합하는 것은 통상의 기술자에게 용이하다고 보아, 청구항 14 역시 진보성이 부정되어 특허 무효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기타 무효 사유 (기재불비, 공동출원 위반 등)
원고가 주장했던 다른 무효 사유들(기재불비, 공동출원 규정 위반, 무권리자 출원 등)에 대해서는, 선행 확정심결에서 이미 판단되었고 새로운 유력한 증거가 제출되지 않아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다시 판단하지 않거나, 또는 주장의 근거가 부족하다고 보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론: 특허 무효 심결의 일부 취소 및 시사점
결론적으로 법원은, 이 사건 특허 무효 심판 청구가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지 않으며, 청구항 1, 8, 14는 각각 선행기술 또는 그 결합에 의해 신규성 또는 진보성이 부정되어 특허 무효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청구항 14의 경우 다른 선행기술 조합에 의한 진보성 부정은 인정되나, 원고가 주로 주장했던 일부 선행기술(예: 5, 6, 7, 10)에 의해서는 그 구성이 개시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이 사건 특허 제1항, 제8항에 대한 특허 무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특허심판원의 심결 부분은 위법하다고 보아 취소하고, 제14항에 대한 부분 및 기타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은 심결 부분을 유지하여, 원고의 청구를 일부 인용, 일부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번 특허 무효 분쟁 사례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 일사부재리 원칙의 엄격한 적용과 예외: 한번 확정된 심결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동일한 무효 사유라도 새로운 핵심 증거(주된 선행발명)가 제시되면 다시 다툴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 청구범위 해석의 중요성: 특허 분쟁의 승패는 청구범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됩니다. 명세서 전체의 내용과 기술적 의의를 고려한 객관적·합리적 해석이 필수적입니다.
- 선행기술 조사 및 분석의 철저함: 특허 출원 전은 물론, 등록 후에도 경쟁 기술 동향과 선행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분석이 특허 무효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중요합니다.
- 첨단 기술 분야 특허 분쟁의 복잡성: FinFET과 같은 첨단 기술 분야의 특허는 기술적 내용이 복잡하고 선행기술도 방대하여, 특허 무효 분쟁 발생 시 심도 있는 기술적·법률적 검토가 요구됩니다.
특허는 기술 혁신을 보호하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그 유효성에 대한 끊임없는 검증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이번 FinFET 특허 무효 분쟁 사례는 이러한 특허 제도의 역동성과 법원의 신중한 판단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